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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정보회사 인프라 구축 15년, 그리고 결혼문화연구소
Date: 2005-09-21 12:01:09 / Hits:2853

" 결혼정보회사 인프라 구축 15년, 그리고 결혼문화연구소... "


7년 전 나는 컴맹이었다. 사회학 분야는 더더욱 제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전산화라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의 틀을 다지고, 이 토양 위에서
이제는 전문가들이 역량을 발휘해서 관련사업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기초를 닦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관련 전문가(연구원)들이 이전에 이뤄놓은
성과를 바탕으로 보다 체계있고, 전문적으로 결혼정보사업을 발전시킬 때가 된 것이다.

어떤 일의 머릿돌을 놓고 기초를 쌓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해냈고 또 해내려고 한다. 황무지에서 꿈을 일궈낸 셈이다.
무엇보다 위기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냈다.



1. 커플매니저의 잦은 퇴직이 매칭윈도우를 만들었다.
아무리 유능한 커플매니저도 몇개월을 못버티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서는 신상을 부풀리게 되고, 그런 신상을 듣고 소개에 응한 회원들의
클레임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98년, 이메일 개념을 알게된 후 만남 전에 메일로 상대의 프로필을 전달해서
미리 파악하게 하여 적어도 신상을 잘못 알고 만나는 일을 최소화하고, 그와 관련된
후유증을 줄여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매칭윈도우 탄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매칭윈도우는 매칭에 대한 거절율 증가로 인한 생산성 저하,
환불 증가, 그리고 저프로필 회원을 접수받지 못하게 됨으로써 경영악화를 초래했다.
매칭윈도우 실현과 함께 회사 순익이 제로가 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회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매칭윈도우는 그 취지에 맞게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2. 96년의 1차 DB 실패가 사회학 분야 연구원들을 영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92년부터 DB화가 필요하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었고, 그래서 95-96년에 걸쳐
내 경험에 전문 프로그래머의 작업이 보태어져 전산화가 시도되었다.
(그때도 VB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됨)
그때까지 가입했던 회원 6-7만명의 자료를 입력하였으나 버그로 인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아픔이 있었다. 당시 프로그래머는 그 이유로 자료 입력의 오류를 꼽았는데,
용어를 표준화하고, 정리된 포맷이 먼저 만들어져야 함에도 그때 그때 임의로
무조건 자료만 입력하다 보니 결국 컴퓨터가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후 2000년도에 전산화가 본격화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대신
우정애씨(DB크리닝)를 비롯, 전문 연구원을 영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수십 수백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진 회원 상담 관리폼... 회원카드.
전산화야말로 아픔에 배어있는 한편의 드라마다. 지금의 기본화면은 수없이 뜯어고치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되었다. 커플매니저들에게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것이 수십 차례.
91년,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결혼정보회사의 개념조차 없었고, 가입신청서를 1장을
얻기 위해 폰팅회사에까지 손을 내밀었는데, 그마저도 노하우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지금의 기본화면, 회원관리폼이 나오기까지의 15년이 바로 선우의 역사다.


4. 회원미팅의 구조적인 모순이 하모니매칭 시스템으로 연결되었다.
가입 당시 회원이 제시한 이상형과 소개시 실질적인 만남상대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은
회원의 실망은 물론 커플매니저에게도 좌절과 상처가 되었다. 종전에는 커플매니저가
매칭을 진행했는데, 자신이 관리하는 수백명 회원들 자료를 일일이 찾아 매칭하는 일은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정교함도 떨어졌다.
내가 커플매니저로 현장 업무를 해보지 않았다면 매칭에 대한 회원 불만을 커플매니저의
업무 능력으로만 결부시켰겠지만, 여기서 한발 나아가 하모니매칭시스템을 구상해냈다.


결혼상담소가 정보사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인프라의 토대는 이렇게 만들어져 왔다.
위의 4가지 토대가 만들어지면서 이제 결혼사업은 학문의 영역이든, 비즈니스든
관련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치면 도약할 수 있는 기초가 확립된 것이다.
직원수가 100명 정도인 작은 회사가 대기업이나 정부에서나 할 수 있는 규모의 투자를
했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1. 집중력과 헝그리 정신이 도움이 되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정말 미련한 성격이 결국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말이 7년이지, 회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고,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결혼정보회사의
인프라 구축을 포기하지 않은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미련하다.
그 7년의 시간은 때로는 지옥같았다.


2. 중요한 시기마다 필요로 하는 분야의 전문 연구원들이 적기에 영입되었다.
2002년에 처음으로 해당분야 전공자들이 영입되어 이전 업무의 토대 위에 DB 표준화의
기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인프라 구축에 탄력이 붙었다.


3. 전산개발연구원들의 헌신어린 노력이 있었다.
누구는 외주를 주면 되지 않았나, 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생기는
변수를 제때 처리하고, 감당하기에는 외주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종로 5가 시절, 어느 눈오는 날 저녁이었다. 개발 연구원들이 야근을 하는데,
건물의 현관문이 잠겨 007처럼 담을 넘어 야식을 전달받던 장면들은 평생토록
남을 아름다운 기억이다.


4. 사심이 없고,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추구했다면 정말 많이 벌었을 것이다. 시스템 상의
작은 오류나 회원관리에서 다소 부족한 점들은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있었다.
회원들은 알기 힘든 내부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젊었고,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았다. 나와 선우 가족들의 미래가 더 중요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

1. 기존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다듬어야 한다.
완성은 되었지만, 지금은 너무 거칠다. 대전제는 충족되었지만, 정교함에서 많이 부족하다.
최근 내가 커플매니저 업무를 직접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마지막 마침표까지 내가 찍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 성숙해진 안목,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니
업무집중이 되고, 여기서 얻어진 성과는 좋은 쪽으로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


2. 보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판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우리 시스템을 고려청자로는 결코 만들지 않겠다. 최고의 작품이지만, 그 생성의
원리는 베일에 쌓인 고려청자 말이다. 많은 연구원들, 개발자, 기획자들이 우리의
시스템을 응용 발전시킬 수 있도록 현재의 모든 시스템을 보다 체계있게, 그리고 투명하게
정리하여 활용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3.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선우2기를 주도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만일 가족사회학, 재혼학, 결혼학을 주요 연구과제로 삼은 학자가 있다면
결혼문화연구소와의 co-work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관련 학문을 체계있게 공부한 사람들이 연구소에 합류한다면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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