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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십시요
by yhjun  2004-10-21 11:13 공감(0) 반대(0)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고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고 오십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이외수 산문집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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