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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하나 추천... 반고흐 영혼의 편지.
by jong100  2002-08-01 23:05 공감(0) 반대(0)
벌서 오늘만 4번째 도배네여..
옛날의 도배습관이 돌아 왔나.. ! 현제 제가 읽고 있는 책중에.. 좋은 책이 있어 추천해 드리고자 합니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입니다.
반고흐의 편지를 모아서 책으로 만든것이랍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기 쉬운 책이지만.. 반고흐가 동생테호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참으로 진실된것 같더군요. 편지 내용중에.. 고흐의 그림을 삽입하여. 그림에 대한 이해도 돕고 있답니다. 시중에 많은 처세술에 대한 책이 나왔지만..
이책만큼 좋은 책은 없다 생각되네여.
및의 내용을 책의 일부중 한부분입니다.
한번 꼭 읽어 보세여..
^^;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



테오에게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나 좋으냐. 정말 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직은 산 자의 땅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너와 함께 산책을 하니 예전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삶은 좋은 것이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값진 것이라는 느낌 말이다.

근래 내 생활이 더 보잘것없게 되면서 삶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너와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유쾌한 기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일하는 것이 금지된 채 독방에서 지내는 죄수는 시간이 흐르면, 특히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리면,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겪게 된다. 내가 펌프나 가로등의 기둥처럼 돌이나 철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다정하고 애정어린 관계나 친밀한 우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련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애정이나 우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무언가 공허하고 결핍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네가 이번에 나를 찾아준 것이 너무 고맙웠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가 소원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만큼 당분간 집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모두 내 잘못이고, 내가 사물을 바로 보지 않는다는 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로서는 힘들고 꺼림칙한 선택이지만, 며칠은 에텐〔고흐의 가족이 있던 곳〕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이 더 친해졌으면 한다. 내가 정말로 너나 식구들에게 폐만 끼치고 부담이 된다면, 그래서 나 스스로를 침입자로 여기거나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방해하지 않도록 물러서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슬픔에 잠겨 절망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우리 집에 나로 인해 그토록 많은 불화와 고통과 슬픔이 있어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더 힘들다. 그게 정말이라면 더 이상 살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런 생각을 품고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다른 생각도 떠오른다. ''이것은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꿈에 불과하고, 시간이 흐르면 상황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러한 내 생각이 옳아서 상황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진보를 계속해서 믿는 것이 미신에 사로잡힌 짓이라고 여기겠지.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네가 떠난 후 밤거리를 걸어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초상화를 그렸다. 잘 있어라.



1879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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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새의 운명



테오에게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을 지켜 왔는데, 어쩔 수 없이 펜을 들었다. 그동안 너는 나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렸고, 나도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렇게 지내지 않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좋을 텐데……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만 들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편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람은 테오, 바로 너다.

네가 50프랑을 보냈다는 소식이 에텐에서 왔더라. 그래서 그 돈을 받기로 했다. 물론 많이 망설였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내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으니 달리 어쩌겠니. 그래서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보리나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내가 에텐 근처에 있기를 원하셨지만, 거절했다. 그렇게 한 것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싫든 좋든 나는 가족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존재, 나쁜 놈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겠니? 그래서 멀리 떠나 있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새들에게 털갈이 계절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깃털을 잃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지.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실패를 거듭하는 불행하고 힘겨운 시기라고 할 수 있겠지. 털갈이 계절이 있기에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으므로 이 변화의 시기에 애착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겠지. 그리 유쾌한 일도 재미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가족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그렇게 희망이 없을까? 비록 아버지는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난 적이 전혀 없지만, 다른 식구는 훌륭한 사람들이니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결국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지면 다행이겠지만(그 이상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선은 너와 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겠지. 오해하기보다는 좋은 관계를 맺는 게 더 낫지 않겠니.

추상적인 이야기를 꺼내서 너를 괴롭히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정열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은 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친 행동을 하기도 했지.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조금 더 참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일도 이따금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가끔 무모한 행동을 하잖아.

그렇다고 어떻게 하겠니. 나 자신을 어떤 일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봐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열정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겠지.

이를테면, 빵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해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정신을 고양하고 탐구할 필요를 느낀다. 너도 그걸 이해할 수 있겠지. 다른 환경에서 살았을 때, 그러니까 예술작품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살았을 때,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런 것에 대해 거의 광적인 열정을 품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도 그림의 나라에 대한 향수를 자주 느끼고 있다.

렘브란트나 밀레, 혹은 쥘 뒤프레, 들라크루아, 밀레이, 마테이스 마리스가 누구인지 내가 잘 알고 있었다는 건 너도 기억하겠지. 안타깝게도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환경에 있지 못하다. 그러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것은 영원히 살아 있어서 계속 그 대상을 찾아다닌다고 하지 않니.

향수병에 굴복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네 나라, 네 모국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그래서 절망에 무릎을 꿇는 대신 적극적인 멜랑콜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슬픔 때문에 방황하게 되는 절망적인 멜랑콜리 대신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멜랑콜리를 택한 것이다.

그후 진지하게 독서에 몰두했다. 성경, 미슐레의 《프랑스 혁명》, 지난 겨울에는 셰익스피어와 빅토르 위고의 책, 그리고 디킨즈와 스토우, 최근에는 애쉴리와 좀 덜 고전적인 여러 작가들, 마이너 계열의 위대한 거장 등 …… 파브리시우스와 비다가 그 마이너 계열의 작가들에 포함되어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그런데 이처럼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부주의해지기 쉬워서 이따금 엉뚱하거나 충격적이고, 관습과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나도 그걸 알고 있고, 또 그게 충격적일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봐라.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일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처럼 그렇게 하는 건,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고독을 보장해주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고독이 너를 일에 몰두하게 하고, 네 생각 전부를 차지하면서, 꿈꾸고 생각에 잠기게 할 것이다.

지난 5년 가량의 세월 동안, 나는 안정된 직장 없이 늘 궁지에 몰린 채 방황해왔다. 너는 내가 그동안 뒷걸음질만 치면서 나약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 생각이 옳을까?

나도 이따금 밥벌이란 걸 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친구들이 선의를 베풀어 도와주었지. 좋든 싫든 얻을 수 있는 것을 취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왔다. 내가 많은 사람의 신뢰를 잃었다는 건 맞는 말이다. 경제적인 형편도 좋지 않은 게 사실이고. 내 미래가 처량한 것도 부인할 수 없고, 더 잘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맞다. 생계유지를 위해 노력했어야 할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공부가 상당히 허술하고 빈약하며,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하기에는 내가 가진 수단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옳다고 해서 내가 점점 퇴보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바로 나올 수 있는 것이냐?

왜 대학을 끝까지 마치지 않았느냐고, 왜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을 계속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그 문제라면 학비가 너무 비싸다는 대답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지금 내가 택한 길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맞이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최초의 덧없이 지나가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예술가뿐 아니라 복음전도자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따금 밉살스럽고 전제적이며 격식만 따지는 오래된 학교를 볼 수 있다. 그곳에는 고통을 혐오하는, 한마디로 편견과 관습의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담당구역의 일자리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또, 자기 부하를 위해 일자리에 빨간 테이프를 붙여두고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을 내쫓으려 한다.



내가 현재 정상적인 직업이 없고 오랫동안 그런 직업을 갖지 않은 까닭도, 일자리를 자신과 생각이 같은 자들에게 나눠주는 신사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서일 뿐이다. 그것은 그들이 독실한 신자인 체하면서 나를 비난할 때 들먹이는 외모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은 더 뿌리 깊은 문제가 있다. 정말이다.

이 모든 걸 고백하는 이유는 불평을 하기 위해서도, 변명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나의 기억을 너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이다. 지난 여름 네가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이곳 사람들이 ''마녀''라 부르는 버려진 광산 근처를 산책한 적이 있었지. 그때 너는 리즈위크에서 오래된 운하와 물방앗간 근처를 함께 산책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예전에는 많은 것에 동의했었다는 말을 했지. 그리고 "그때 이후로 형은 변했어. 더 이상 예전의 형이 아니야"라고 말했지. 그래, 그러나 나는 그 말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예전에는 생활이 지금보다는 덜 어려웠고 미래도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았다는 차이는 있겠지. 그러나 나의 내면이나 사물을 보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굳이 변한 것을 말하자면, 당시에 내가 생각했고 믿고 사랑했던 것을 지금은 더 생각하고 더 믿고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렘브란트, 밀레, 들라크루아 등 그 누구 혹은 그 무엇에 대해 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데 세상에는 믿고 사랑할 만한, 가치있는 것들이 많지. 알겠니? 셰익스피어 안에 렘브란트가 있고, 미슐레 안에 코레조가, 빅토르 위고 안에 들라크루아가 있다.

또 복음 속에 렘브란트가 있고, 렘브란트 안에 복음이 있다. 네가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같은 것이다. 그것을 왜곡하지 말고 비교대상을 독창적인 사람들의 장점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마라.



제발 내가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나는 꽤 성실한 편이고, 변했다 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지식을 더 쌓고 이런저런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뿐이다. 게다가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이런저런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고, 온갖 필수품이 내 손에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또, 내 영혼을 갉아먹는 지독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 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신이여,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어쩌면 네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쬐러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굴뚝에서 나오는 가녀린 연기뿐이거든. 그러니 그냥 가버릴 수밖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할까(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끈질겨야 할까!)? 신심이 있는 사람은 빠르든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

모든 일이 좋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도 오랫동안 그랬고,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못된 후에는 다시 좋아지게 될지도 모르지. 물론 그걸 계산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더 나은 변화가 온다면, 나는 그걸 얻은 것으로 생각할 테고,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드디어, 그래, 결국에는 뭔가 되고야 마는구나!

형은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뚱딴지같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바보 같은 기대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이 아무리 말도 안 되고 바보같다 해도,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이상 그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펜이 가는 대로 적다 보니 두서 없는 편지가 된 것 같다. 네가 나를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봐준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사실 쓸모 없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다. 천성이 게으르고 강단이 없어서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고…… 나를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쓸모 없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사람들이다. 일을 하려는 욕구로 불타지만 손이 묶여 있고 갇혀 있어서, 한마디로 어려운 환경이 그를 억눌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지.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른다 해도 본능적으로 어떤 느낌이 있기 마련이지. 즉, 나도 그 무엇인가에 적합한 인물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쓸모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얼까? 그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경우다. 원한다면 나를 그 가운데 하나로 봐도 좋다.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실행할 수가 없을 뿐이다. 그게 뭘까?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는 알고 있어서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새들은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를 새장 창살에 찧어댄다. 그래도 새장 문은 열리지 않고, 새는 고통으로 미쳐간다. ''저런 쓸모 없는 놈같으니라고.'' 지나가는 다른 새가 말한다. 얼마나 게으르냐고. 그러나 갇힌 새는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잘 하고 있고 햇빛을 받을 때면 꽤 즐거워 보인다.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 오면 우울증이 그를 덮친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그를 새장에 가둔 아이들이 말한다. 벼락이 떨어질 듯이 어두운 하늘을 내다보는 그에게 자기 운명에 반발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나는 갇혀 있다! 내가 이렇게 갇혀 있는데 당신들은 나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 바보 같은 사람들! 필요한 건 이곳에 다 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새처럼 살 수 있는 자유가 없지 않나!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정말이지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그를 막고, 감금하고, 매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창살, 울타리, 벽 등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고 상상에 불과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묻곤 한다. 신이여,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내가 영락을 거듭해왔다면, 너는 상승가도를 달려왔다. 내가 인심을 잃어온 반면 너는 그걸 얻어왔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이다. 그 사실은 나에게 늘 기쁨을 주었다. 너에게 진지함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게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너는 아주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니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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