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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핸드폰은 왜 울렸을까.[10]
by 전철남 (대한민국)  2011-01-22 01:33 공감(0) 반대(0)
드드드드드...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재빨리 몸을 뒤진다. 근데 없다. 어딨지?
드드드드드...
막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중이다. 마음이 급하다. 어딨는거야. 진짜.
드드드드드...
아차. 방에 놔두고 왔구나. 급하게 방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방문을 여는 순간.
진동은 멈춘다. 핸드폰은 토끼모양의 핸드폰 꽂이에 잘 모셔져 있다.
누구였을까. 나는 얼른 폴더를 열어젖힌다. 근데. 허걱.
핸드폰은 꺼져있다! 그럼 아까 그 진동소리는? 등골이 오싹해진다.

집을 나선다.
정류장에 낯선 외국인이 서 있다. Hi.
얼마전 한국에 온 미국인이란다. 근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단다.
토요일, 어디가냐고 묻는다. 일하러, 수업하러 가는 중.
한국은 토요일에도, 방학중에도,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런 나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같은 버스를 타고 잠실로 간다.
잠실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보도를 걷는다.
그런데 그순간, 저멀리서 누군가 낯선 이의 얼굴이 보이더니,
눈치 챌 틈도 없이 목례를 하고 지나간다. 헉. 누구지?

아침부터 뜻하지 않게 꼬부라진 영어발음 듣느라,
나는 모든 촉각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몰라본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목소리를 들은지, 얼굴을 마주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지난 크리스마스 때에도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았었나.
그런데 얼마나 되었다고.

인간은 이기적이다.
좋아하는 것도, 잊는 것도 전부 이기적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결코 허황된 가설은 아닌 것이다.
내가 먼저 좋아했고, 내가 먼저 잊은 그 사람.
그래. 변명이라도 해보자.
그만 만나자고 한 쪽은 내가 아니었지. 더이상 설레임이 없다고 한 것도 내가 아니었지.
우리 나이에 무슨 설레임인가라고 따지지도 못하고 수긍했던 것은 아마도 나였었지.
그래. 이렇게 말하고 보니 더 구차하다.
정말 좋아했다면 왜 나는 잡지 않았을까. 정말 좋아하긴 했던 것일까.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나는 사람을 잡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 한곳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그녀의 마음도 언젠가 떠나갈 것이라는 그런 원초적 불안감.
그렇기 때문에 조금더 오래 남아있을 것 같은 사람을 기다려보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혹시 자신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고 마리라는 그런 자신감.
아니면 배려 때문은 아닐까. 지나친 배려가 그녀를 놓아주게 된 것은 아닐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지금 혼자다. 그것이 중요하다!
매일밤 30분씩, 핸드폰으로 통화하던 그녀는 이제 없다.
매일낮 출근할 때, 문자를 주고받던 그녀는 이제 없다.
감기조심하라고, 밥 꼭 챙겨먹으라고 걱정해주던 그녀는 이제 없다.

정신줄을 놓고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미국인 친구가 핸드폰을 내민다. 연락처 좀.
추위 때문인지, 그녀 때문인지, 나는 알파벳 자판을 못찾고 당황한다.
어떻게 대충 번호를 찍고 그는 나중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든다.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그 리스닝이 안된다. 역시 난 리스닝이 약해. 나는 문법전문강사다!

드드드드드...
핸드폰을 꺼낸다. 대출 어쩌구 저쩌구. 나는 즉시 스팸차단을 눌러 삭제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녀의 이름을 찾는다.
문자를 보낸다. 잘 지내고 있는지,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사를 건넨다.
조금 시간이 지나 답문이 온다. 잘 지내고 있다라는 역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답문이다.

나는 다시 일상이다.
학원에 도착하니 참새들이 또 앵겨붙는다.
참새 하나가 핸드폰을 뺏어간다. 그리고 또 묻는다.
- 쌤. 여자친구 어떻게 됐어요?
- 여자친구? 나한테 여자친구가 있었냐. 그 여자친구, 누군지 나도 궁금하다.

토요일 아침, 왜 핸드폰이 그렇게도 울렸는지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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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2011-01-22 01: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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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바꾸세요. 요즘 존거 마나염!
잘읽엇습니다.  2011-01-22 02: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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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제것도 전원이 꺼져있는 상태에서 알람은 여전히 울리더라구요. 그래서 꺼놔도 소용없다는..
어쨋튼 봄이오기전에 우리모두 힘내서 짝꿍을 만들어보자구요.
ELW  2011-01-22 08: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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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전철남님의 글이다.

소설을 읽는 느낌. 어찌나 글을 잘 쓰시는지 글쓰는 게 업인 제가 보면서도 감탄합니다.

정말 잊고 있던 연애에 대한 불안감이 무엇인지 공감하게 되는군요.

"그녀는 이제 없다"... 하지만 지나간 이에게 다시 연락을 한다는 건 결국 다시 또 상처로 돌아올지 모릅니다.

인연이 아니니까 헤어진 것이겠지요. 어딘가 있을 단 한 사람과 교감하면 되는 거니까 힘내자고요! 지아요~!
전철남  2011-01-22 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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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제 안에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너무 많은가 봅니다. 하지만 그런 불안감 때문에 연애를 안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겠지요. 즐거운 토요일 입니다. 다들 좋은 만남 가지시길 바랍니다.
김대리  2011-01-22 09: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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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시네요..한수 배우고 갑니다^^
 2011-01-22 13: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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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전철남 선배님의 글은 담백한 음식처럼 부드럽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동안 게시판에 안 보이셔서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글로 다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ㅎ
항상 최.저.이.율.대.출.가.능 문자만 오는 제 핸드폰과 같으시네요. ㅠ
전철남  2011-01-22 22: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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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 진님. 반갑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먹고 사는게 바빴습니다. 연애하느라 바빠야 하는 나이에 여전히 먹고 사는 게 바쁘니 무슨 선배자격이 있는지. 그냥 부끄럽습니다.
마르스  2011-01-22 23: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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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닉넴에 댓글 달아봅니다.
이런 인사하기 안타깝지만 그래도 반갑네요. ㅎ
전철남  2011-01-23 00: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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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 마르스님도 반갑습니다. 그 닉네임도 참 오랜만이네요.
 2011-01-23 01: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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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남 선배님 학군 선배님이시잖아요 ㅋ
전 학군#39입니다. 이번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항상 선배님이라구 썼었습니다.
그동안 글을 못 뵈어서 항상 궁금했지만 좋은 분 만나셨으려니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으니 다시 한번 모두 힘내서 좋은 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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