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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아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3]
by MU (대한민국/여)  2006-12-20 14:10 공감(0) 반대(0)
출처 : 사랑에 관한 심리학적 이론과 방법을 소개한 책 『사랑의 의미』(김중술 저, 서울대출판부,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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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적 고통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신체적 고통까지도 이겨 내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는 최근의 한 가지 방법은 인지-행동적 요법(cognitive-behavioral therapy)이다. 이 방법의 요체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감정반응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해석(혹은 설명, 생각하는 방법)을 달리 함으로써 마음 속에 생기는 감정반응(고통)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실연의 아픔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고왜곡 몇 가지를 알아보자.

첫째로 과잉일반화(overgeneralization)을 들 수 있다. 어느 한 여자에게 거절당하고 상처받은 남자가 앞으로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거절할 것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다. 어떤 여자라도 자기를 좋아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 같고, 앞으로 누구에게 사랑을 청하더라도 모두 거절당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며, 그리하여 자기는 영원히 고독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며, 왜곡된 사고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며, 아름다움이나 남자다움과 같은 심미적 혹은 기호의 기준 역시 ‘제 눈에 안경’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 여자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거절했지만, 다음 번에 다른 여자는 당신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머지 도대체 이런 남자를 세상 여자들이 여태껏 왜 그냥 두었는 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우람하고 근육질인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싫어하는 여자도 있고, 뚱뚱하고 큰 여자가 아니면 장가들지 않겠다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그런 여자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남자도 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남자나 여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과잉일반화를 잘 하게 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의 성격특성에 관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자기를 안 좋다고 하면 마치 자기에게는 좋은 점이란 한 가지도 없는 것처럼 자기는 모든 측면에서 다 나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머리가 다소 덜 좋은 사람이 성격은 좋은 경우가 있고, 성격이 좀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예술적인 소질은 뛰어나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실패하거나 거절당하면 마치 자신의 모든 특성이 혹은 자기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나쁘기라도 한 것처럼 실의에 빠지며 자기는 영원히 누구에게도 사랑을 못 받을 것처럼 생각한다. 이 세상에 본질적으로 (또는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누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진실과 선이 자리잡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사람은 조물주가 처음부터 창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존재 이유가 되며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거절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 사랑을 잘 할 수 있으려면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사랑의 실패를 모든 사랑의 실패로 생각한다거나 자기 인생 전부의 실패로 생각할 때, 그는 비합리적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이며 결과적으로 우울증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실연의 아픔을 가져오는 두 번째 사고왜곡은 자기비난 혹은 ‘모두 내 탓이요’ 사고방식(personalization)이다. ‘내가 좀 더 잘 났다면’, ‘내가 좀더 적극적이었다면’ 등 어떤 이유로든 사랑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모두 자기 탓이고,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자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사랑이란 두 사람이 함께 이루는 것이며, 그것의 성공이나 실패의 책임은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 공통으로 있다. 그런데 그 책임이 당신에게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기중심적 태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과대망상적 사고라 할 수 있고, 비현실적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 하에만 있었다고 한다면, 상대방은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상대방은 당신 자아의 연장에 불과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자아나 독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존재였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당신을 거부한데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용모, 나이, 가문, 혹은 출신지역 같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당신의 책임에 속하는 것들이 아니다. 나는 가끔 혼자 생각으로, 얼굴이 미인이라고 뽐내려 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뭐 당신 때문이냐고 말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부모가 그렇게 낳아주고 길러준 결과이지, 그 사람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지 않은가? 외모가 못 났다면 그것이 왜 당신의 책임인가?
혹은 상대방이 당신을 거부한 이유가 친밀감에 대한 공포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 중에는 너무 가까워지면 그와 정비례로 불안해지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지 결코 당신의 문제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 이상으로 특히 이성 간에 가까워지는 것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매우 많다. 그런 경우에 대부분 그 사람들은 어떤 구실이든 찾아내어 거부하는 이유를 상대방에게 돌리며, 마치 상대방의 결점 때문에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처럼 말한다. 물론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솔직해지기에는 너무 불안하고 솔직해졌을 때 나타나게 될 결과가 너무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병 비슷한 현상이다.
혹은, 상대방이 당신을 거부한 이유가 당신의 어떤 결점 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당신보다 더 좋은 다른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도 좋기는 한데 새로 나타난 사람이 당신보다 조금 더 좋은 것이다. 이것도 당신이 못난 때문인가?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 되기 전에는 이와 같은 상황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무조건 자신을 비하하고 자책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잘못 되어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 원인 중에서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고칠 수 없는 것은 지그시 감수하는 마음 자세를 터득하는 것이다. 사고왜곡적 자책과 현실적 문제해결 행동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사고왜곡적 자책을 잘 하는 사람은 우울증적 소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사람은 마음의 평화가 쉽게 손상받을 수 있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는 핵심적인 것은 잘못된 책임이 나 자신보다 외부환경 혹은 타인에게 있으며, 문제의 영역이 전반적이 아니고 한정적이며 그것은 영속적이 아니라 일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실패를 통하여 어떤 교훈을 배우겠다는 태도이다. 기실 이 세상에는 공짜란 단 한 가지도 없으며, 대가없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배우고 또 배우는데 그 때마다 적지 않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현금일 수도 있고, 때로는 체면의 손상일수도 있으며, 때로는 가슴의 상처일 수 있다. 사랑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사랑의 파탄을 통해서 우리는 매우 귀중한 교훈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전은 건진 것이 아닌가?

사랑의 실패에서 흔히 나타나는 세 번째 사고 왜곡은 이분법적 사고(all-or-nothing, dichotomous thinking)로서 흑백논리라고도 한다. 가령 어떤 사람하고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 관계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거나, 그 관계(연애)는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서 실제로 세상에 실패한 관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 충분히 잘 맞지 않음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두 사람이 잘 맞는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 기준에는 성적 만족도, 자기 마음을 열어 보이는 솔직성, 신뢰감, 충실함, 상호존중심, 정직성, 함께 웃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능력, 농담을 이해하는 능력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것들을 각각 0점에서 10점에 이르는 범위로 평정해 보라. 이렇게 평가해 본다면 어떤 관계든 ‘완전히 실패’라든가 ‘완전히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하게 되면 감정반응 역시 극단적으로 되기가 쉽다. 상대방을 너무 좋아해서 이상화하거나 극단적으로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며 중용을 모르게 된다. 이분법적 사고란 상대가 우군이 아니면 적군이 되라는 단순한 논리이므로 어제의 애인이 오늘이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제까지는 무척 다정하던 사람이 오늘은 상대를 잔인하게 해치는 행위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격의 미성숙이며 감정조절의 부적절성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이 세상에 완전히 흰 벽이나 까만 옷감이 없듯이(거기에는 모두 조금씩 덜 흰 부분, 덜 까만 부분이 있다) 어떤 사람(남편, 아내, 스승, 제자, 성직자, 정치가)도 어떤 감정(사랑, 미움, 즐거움, 권태, 우울, 흥분 등)도 완전한 것이란 없다. 완전치 못하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뿌리칠 때 오는 마지막 결과가 무엇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것을 없다고 보채는 것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실연의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게 하는 네 번째 사고왜곡의 종류는 재앙화(catastrophizing)이다. 재앙화란 어떤 일(결과)의 부정적 측면만을 극대화하여 생각함으로써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사랑이나 연애의 실패는 한편으로는 대단히 우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일으킨다. 부모나 형제, 친구들이 내가 실연 당했다는 걸 알게 되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될까? 한국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결혼이든 연애든 그것의 파탄이 사회적 체면에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재앙화를 초래하는 것은 사랑하는 능력에 대한 불안이다. 내가 만일 연속적으로 연애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혹은 결혼이 깨어졌다면 혹시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든가 본질적인 성격상의 어떤 결점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내가 성공적으로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나 혹은 자신감이다
이와 같은 불안감을 퇴치하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안을 받아들이라. 불안을 그대로 체험하기로 결정하고, 절대 불안과 싸우지 말라. 불안에 저항하면 그것이 가져오는 불쾌한 경험을 더 연장시킬 뿐이다. 그러지 말고 불안과 함께 흘러가라. 불안 때문에 당신의 사고나 감정이나 행동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라.
둘째, 불안을 관찰하라. 그것의 오르고 내림을 0점에서 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기라. 자신은 자신의 불안 자체가 아니다. 요점은 자신의 근본적인 자아를 불안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즉 불안상태에 있기는 하되, 그것의 일부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셋째, 불안과 더불어 행동하라. 정상적으로 행동을 유지하라. 마치 전혀 불안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라. 필요하다면 다소 속도를 늦출 수는 있으나, 계속해서 움직이며 호흡을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만일 당신이 그 상황에서 도망치면 불안은 줄어들지만 공포심이 높아진다.
넷째, 마음속에 불행한 일이나 창피한 일이 자꾸 떠오르거든 그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논리성과 실제로 일어날 확률을 근거로 그 타당성을 따져 보라. 그리고 가능한 최악의 사태를 생각해 보고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so what?)'로 대처해 보라. 사실 그 최악의 경우란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해도 나의 인생이 종말이 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결국 나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남들의 판단이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다섯째, 구조요인(rescue factors)'를 생각하라. 자신의 성격상 장점, 과거의 성공한 일들,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가족, 친척, 친구, 동료 및 선후배를 생각하라. 그리하여 자신이 불행한 사태를 얼마나 잘 견디고 이겨내는 지를 자기 자신에게 보여 주고 놀라게 해 주라.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절망하지 않는 일이며, 절망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의 실패를 자기가치의 부정으로 연계시키지 않는 일이다. 잘못은 솔직히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의 상처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기사랑의 정신으로 그렇게 해야한다. 자기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사랑의 실패는 다만 인간 성장의 한 과정(사다리의 한 단계)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배우고 성장해 간다. 아마 다음 번에는 보다 만족스럽고 보다 친밀한, 그리고 성공적인 관계형성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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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2006-12-20 15: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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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엄청 긴 글이삼
장**  2006-12-20 23: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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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지 알거같다...
장**  2006-12-21 0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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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감탱이가 한말씀 올립니다. 다들 배우신분들이... 우리나라말 좋은말입니다. [~삼]체는 도대체 어디서 생긴 말입니까? 예쁘고 고운말이 더 많은 우리나라 말인데요.
ps)세대차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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