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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blin...[7]
by 낭자 (대한민국/여)  2006-12-08 05:08 공감(0) 반대(0)
아일랜드를 여행한 지 일주일 되던 날이었어요.

혼자 다니는 일이 슬슬 심심해지기 시작할 무렵,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더블린에 도착한 날,

나는 한 대학 기숙사에 짐을 풀어 놓고, 까만 맥주와 빵을 먹고, 캠퍼스를 어슬렁거리고 있었

죠. 벤치에 앉아서 일기도 쓰고, 괜히 일기장을 얼굴에 덮고 자는 척도 해 보고, 기념으로 산

책 ‘드라큘라’의 책장도 폼으로 넘겨 보고.

그러고 있는데 아까부터 귀에 거슬리던 찰칵, 셔터 소리.

고개를 휙 돌려 그쪽을 보는 순간, 사진기를 들고 있는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죠.

당신도 알다시피, 사진이라면 기겁을 하는 나인데, 카메라가 그렇게 흔한 세상을 살면서도 당

신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는 나인데... 감히 그런 나를 찍다니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

이, 허락도 없이, 심지어 정면 사진을.

흥분하면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고 말을 더듬는 나, 영어는 오죽했을까요.

난 정말 무섭도록 단순하게 말했던 것 같아요.

“나 봤다. 너 내 사진 찍었다. 설명해라. 왜?”

내가 신기했다고 하더군요.

얼굴 동그란 동양 여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몇 시간째 혼자 마냥 노는 게 신기했다고, 사진

을 찍어서 나중에 필름을 통째로 줄 생각이었다고.

그래서 난? 고맙다고 했죠. 솔직히 말하면, 난 그 순간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심

정이었어요. 그 눈이 얼마나 선하던지.



덕분에 그 날은 늦도록 그 친구와 같이 더블린을 구경했어요.

태어나 쭉 그 도시에서만 살았다는 그 친구는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었죠.

더블린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는 내 말에 제임스 조

이스가 태어난 집, 《율리시스》를 쓴 집, 그의 부인이 웨이트리스로 일했던 호텔이 있던 자

리.. 어찌나 설명을 열심히 해주었는지 몰라요. 혹시라도 내가 대충 흘려듣는다 싶으면, “여기

가 율리시스의 초고가 쓰인 집인데, 대문을 안 만져 봐도 괜찮겠니?” 하며 그 집 문패를 만져

보라고 채근할 정도였지요.

U2가 아일랜드 출신 맞냐는, 그냥 해 본 질문엔 U2 멤버 중 누구의 형이 운영한다는 맥주 집

을 구경시켜 주었고, 또 더블린에서 제일 오래된 펍에도 데려가 주었죠. 그 도시에서 제일 맛

있는 치즈 케이크를 판다는 가게에선 기어이 케이크 한 조각을 내게 사 먹였구요.

아마 그 날은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은 사진을 찍힌 날이기도 했을 거예요.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거든요. 너무 많이 찍어서 나중에 보면 어디가 어딘지 모를 것 같다는 내 이야기

에, 그 친구는 걱정 말라고, 너는 몰라도 내가 알지 않냐고..



그런데 그 사진, 내겐 한 장도 없어요. 다음날 만나서 받기로 했는데 내가 안 나갔죠.

그 날 밤 그 친구는 나를 숙소 앞까지 바래다주며 그렇게 말했어요.

“난 저녁 여섯시 이후로 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을 거야. 네가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너도 여

섯시에서 열한시 사이에 이 곳에서 나를 찾아봐. 그러면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러곤 내가 지금껏 들어 본 가장 낭만적인 이별 인사.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 될 거야.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오

늘 아름다웠어. 감사해.”



그 친구는 그 날 하루가 영화 ‘로마의 휴일’ 같다고 했는데, 나는 그 날 하루가 영화 ‘비포 선라

이즈’ 같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다음날 그 친구를 찾지 않은 건지도 몰라요. ‘비포 선라이즈’처

럼 하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건 그 친구가 독일로 떠난다는 아주 짧은 이메일. 나는 그 후 답

장을 하지 않았고, 그 친구도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죠.



그 사진이 지금 내게 있다면, 내가 그 때를 지금처럼 추억할 수 있을까요?

9년 만에 영화 ‘비포 선셋’이 나왔다지요. 그 때로부터 9년 후, 나와 그 친구도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요? 그 친구가 떠난다 하던 베를린의 헌책방에서? 혹은 그 때 그 캠퍼스에서? 혹은

한국에서?



최소한 그 곳이, 당신과의 재회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좁고 가파른 영화관 계단은 아니었으

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밀리며, 잘 지내지, 그렇지 뭐, 그렇게 말하곤 풀린 다리로 후들거리며

계단을 내려와야 하는 그런 재회는 아니었으면..

아니, 하지만 그 날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나는 그 와중에도 좀.. 좋았어요.

당신도 그랬었나요?



- 그 남자 그 여자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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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2006-12-08 05: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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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니 아이리쉬크림이 든 커피가 마시고 싶네요.가보진 못했지만 아일랜드하면 다니엘데이루이스나온 "아버지의 이름으로"란 영화가 떠올라요. 아일랜드독립투쟁하던 아이리쉬 청년과 아버지 얘기인데...예전에 명동 코리아극장에서 본 생각이 나요. 그리고 극작가 유진오닐도...오닐그리고 오코너란( o'-붙은 것들)대부분이 아일랜드성씨라는 군요.
서**  2006-12-08 0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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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나나님 제가 오늘은 아침 일찍 글 올렸는데 벌써 읽고 댓글까지 달아주셨네용^^
이 글이 7군데 여행지를 담은 그 남자 그 여자 2의 마지막 내용이예요.
앞으로도 이것저것 책 읽다가 여러분과 같이 보고싶은 글이 있으면 가끔 올리겠습니다.
제 아이디로 로그인이 되는 날까지...^.^
저 벌써 1년이 훨씬 넘은 올드 회원인지라 언제 짤릴지 모름,, 덜덜덜~ ㅋㅋ
서**  2006-12-08 06: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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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글을 다 올리고 보니 제가 가본 곳은 한 군데도 없네요ㅎㅎ
제가 여행했던 곳은 다 비껴갔어요ㅋㅋㅋ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결혼하게 된다면 그이와 일년에 한번은 해외여행 가고 싶은데, 10년 안에 저 곳들을 다 가볼 수 있을까요.
짝을 찾는데 시간을 다 까먹지 않아야 할텐데...^^
조**  2006-12-08 07: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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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과 두루두루 즐거운 여행 되시길....
김**  2006-12-08 13: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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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남아 더블린항의 조그마한 까페에서 난생처음 아이리쉬 커피 먹구
(그땐 거기에 술들어 있는지 몰랐음..) 얼굴 벌개져서 고객 방문 했다는..T.T..
특히 겨울에 가보시면 이사람들이 왜 커피에 술타먹는지 알게 됩니다..
방**  2006-12-09 00: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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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커피는 좋아했지만 대학때 아이리쉬크림을 사다가 커피에 조금씩 넣어먹었는데....커피도 약간 독하긴하지만 그 아이리쉬크림 원액을 직접먹으면 진짜 후끈 달아오르죠..ㅋㅋ
서**  2006-12-09 03: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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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쉬 커피 아직 못 먹어봤는데 낼 시도해 볼까해요 ㅋㅋㅋ
저는 평소에도 부끄럽거나 화나거나 하면 얼굴이 빨갛게 잘 되는 편인데..
얼마나 후끈 달아오르는지 경험해 보고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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