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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는 풍경[3]
by nana (대한민국/여)  2006-10-23 01:44 공감(0) 반대(0)
추적 추적 비가 온종일 내린 날이었습니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밤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져 옷깃을 세워봅니다.
불현듯 떨어진 낙엽들이 땅 위에 가만히 누워 비의 세례를 온몸으로 견디어내고 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더불어 낙엽을 밟고 가는 제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집니다.

좀 있으면 이 비가 희디흰 눈송이로 바뀌고 그 위를 저벅거리며 조심스레 걷고 있을
제 모습도 보여집니다.

언젠가 늦은 밤 내린 눈으로 하얗게 빛나는 밤의 풍경을 걸으며 새하얀 눈을 밟는
것에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지는 풍경들이 왜이리 안쓰럽게 느껴지던지 돌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그렇게 조심스레 눈 위를 걷던 생각이 나네요.


가만히 창가로 가 창문을 열어봅니다.
밤의 차가운 기운이 스산하기도 하지만 그 차가운 기운에 기대어 바라보는 풍경은
의지하고 싶을 만큼 맑고 깊습니다.

이국적인 소년의 새까만 깊고 맑은 눈처럼 오늘 밤의 풍경은 그렇게 제게 다가오네요.
느티나무 길..이라는 집 앞의 정겨운 표지판도 오늘은 눈이 시릴정도로 차갑고
맑게 다가옵니다.


어제는 화창하고 맑은 날이었죠.

저는 일찍 떡을 배우기 위해 길을 나섰고 멥쌀과 찹쌀 가루가 익는 따뜻한 내음을
맡으며 즐겁게 떡을 김올린 시루에 올렸습니다.

시루에서 새어나오는 김을 막기 위해 국수발을 물에 적셔 살짝 막아주는 요령도
배우고 흑임자가루와 팥가루가 말려지며 잔잔한 무늬를 만드는 찹쌀말이에서
유자청의 향내가 물씬 풍기는 잡과병까지.... 모두가 신기하고 재밌더군요,

각종 한과와 떡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이라 기대했었고 제게 그이상의 재미를 안겨주어
즐거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실습용으로 나눠준 멥쌀가루를 손에 한아름 안고 오면서
저는 아주 작은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햇빛에 반사되며 다양한 빛을 내는 나뭇잎들과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가을의 풍경을
맘껏 즐겼습니다.

차를 타고 오다가 노들길 앞을 지나는데 낙엽색과 어울리는 노란띠가
눈에 띄더군요, 대수롭지않게 보다가 지나치려하니 출입금지라고 씌여진 글씨가
보였습니다.


뭘까하고 가만히 보다가 석달 전에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신문에서 늘 보던 식의 보통의 살인사건이었습니다.
어쩜 너무나 평범해서 신문에도 실리지 못한 그런 사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3살짜리 여성이 살해됐고 그녀의 사망시간을 알리는 건조한 플랭카드와 목격자의
도움을 요청하는 표지판을 지나가다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눈을 가린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그녀의 말없는 억울한 죽음이 그녀의 푸르른 나이와
어울리지 않아 슬펐다기보다는 눈 앞의 익숙한 풍경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나의 안위가 걱정되어 아주 잠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던 부끄러운 기억이있습니다.

그래요. 제가 몇달 전 마주친 그녀는 피해자일뿐이었고 이미 숨이 끊어진 목숨이었지
푸르르고 해맑은 이십대 초반의 어리고 어린, 한때는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했고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던 그런 그녀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던거에요

그냥 제 일상에서 얘기거리를 만든 하나의 사건이었지 그녀의 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아마도 내 주변의 사람이었다면 그순간 제가 그렇게 건조하진 않았겠죠.


노들길 배수로에서 사체 발견.....이라고 쓰여졌던 건조한 사건기록이 그 순간
출입금지의 노란 리본과 동시에 스쳤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제가 보았던 아니 제가 스쳐지나갔던 그녀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누웠던 바로 그 자리였던 거에요.


그 앞을 자주 지나치면서도 한번도 그것에 집중한 적이 없었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이 제 앞에 펼쳐지기만 했지 어두움 속에서 어떤 비명도 질러대지못하고
비명횡사했고 그곳으로 유기됐던 그녀의 사연은 제게 낯설은 풍경이었지요.


노란 출입금지 리본을 보며 나는 갑자기 그녀의 주검이 내가 밟았던 낙엽들처럼
느껴져 마음이 싸아하게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행복과 사색을 위해 그녀의 주검이 있던 공간마저도 감상이 되어야했던 현실이
맘이 아파오더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상은 어쩌면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이기심과 우리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는 조용히 그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친 비약일런지요.

글쎄요. 그게 과연 누구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이 작은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한숨짓고 그런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낙엽지는 풍경 속에서 누군가는 주검이 되어
쓸쓸히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었을 테고 ,오늘 지나친 사람의 떨리는 눈망울에서
아니면 허공에 내뱉어지는 모르는 이들의 한숨과 같은 모든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행복을 꿈꾸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가슴은 너무 작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기에도 늘 부족하죠.
자기 눈물 만을 생각하고 자기 웃음 만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누구는 울고 있고 누구는 떠나고 있고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 앞의 풍경만 말끔하면 그 안에 숨겨진 아픔을 보려하지않습니다.
우리는 자신 만의 행복을 꿈꾸는 이기적인 얼굴들을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란 말로 승화시키기도 하니요.


답답한 마음에 다시 창 밖으로 새까만 밤풍경을 봅니다.
이런 감상마저도 부끄러운 너무나 맑고 차가운 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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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2006-10-23 17: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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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책에 빠진적도 있었는데 길지만 다시금 조은글을 읽게 해주신 나나님에게
감사하단 말하고 싶습니다.
조**  2006-10-23 23: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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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넘 이쁘게 잘 쓰신다 맘도 이쁘시것 같아여 힘내시고 조은글 계속 부탁합니다
조**  2006-10-23 23: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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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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