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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 動 心[2]
by 배트맨 (대한민국/남)  2010-07-30 10:42 공감(2) 반대(0)
나는 항상 배트맨을 꿈꿔왔죠. 낮에는 CEO, 밤에는 정의의사자.
이글은 내가 최근에 어느 무명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어차피 남들 보라고 쓴글이니 심심하실때 시간 때우기로
읽어 보시면 재밌을겁니다.

격투기에 대해 나름 몇 자 적어보고자 펜을 들었다. 필자는 비록 지금은 은퇴했지만, 따로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선수시절 경험을 토대로 격투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자 한다.
70~80년대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복싱에 대한 관심은 21세기 들어 진화하면서 K-1, UFC, DREAM, 센코쿠, Show Time, 스트라이크포스 등 입식 및 종합격투기로 이미 옮겨졌고, 이러한 경기들은 정확한 게임 룰과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보면,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관람 혹은 시청할 수가 있다. 격투기의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해보면, 격투기란 말 그대로 두선수가 싸우는 것이다. 덧붙여 이종격투기란 각 선수가 섭렵한 무술의 종류에 관계없이 그 단체가 정한 특별한 룰에 의해서 자웅을 겨루게 된다. 즉, 태권도 수련자 vs 킥복싱 수련자, 복싱 수련자 vs 주짓수 수련자, 레슬링 수련자 vs 무에타이 수련자....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종류의 무술이 맞붙게 되는 것이다.
내가 몇 년간 수련 받아온 무술이라서 가지고 있는 편견인지는 몰라도 입식격투기에서 무에타이는 최강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에타이는 킥복싱이나 카라데, 태권도 등에 비해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최소의 에너지 소비 및 최대의 타격을 주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무술이며, 우리나라만큼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태국이란 나라를 지켜낸 2000년 역사의 실전무술로써 다듬어져 왔다. 태국 국민 중 남자의 90% 이상, 여자의 50% 이상이 무에타이를 수련 받은 경험이 있으며, 태국 룸피니체육관 사각링에 오르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과거에는 주먹에 대마를 묶고 유리가루를 묻혀서 싸웠지만, 너무 잔인하다고 하여 요즘은 복싱보다는 다소 작은 글러브를 착용하고 싸우게 된다. 물론 복싱과는 달리 킥 공격 및 팔꿈치, 무릎 킥 등의 다양한 공격이 허용된다.
필자는 대한무에타이연맹 소속의 크루져급 격투기 선수였다. 사실 나 자신도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무에타이 선수가 될 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지만 그 당시 여자친구에게 심한 말을 내뱉고 난 후, 사과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결국 시간도 놓쳐 맘고생을 심하게 하다 우연한 기회에 격투기에 기웃거리게 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Elton John 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ard' 가 가슴으로 느껴지는 나날들이었다.
그 당시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 쁘아카오 포 프라묵 등의 멋진 무에타이 파이터를 유심히 보고 있던 터라, 당연 무에타이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인터넷으로 집근처 무에타이 도장을 검색하다가, 찾아낸 도장에 병원 퇴근하는 길에 처음으로 찾게 되었다. 처음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화려한 헬스클럽시설을 상상했던 나는 체육관의 전경을 보고나서 크게 실망했다. 도장은 온통 땀 냄새로 찌들어 있었고, 조명도 어둑어둑. 그리고 나를 무표정하게 반기는 나이 드신 관장님이 실망의 마침표를 찍게 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에....저 무에타이 좀 배워 볼려고 왔습니다...”
“네 다이어트에는 무에타이가 최고죠. 열심히 한번 해보세요.”
“아니..전 선수로서 시합에 출전하고 싶습니다.”
“에?.....” 관장님은 잠시 당황하는 듯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물론 본인이 원하면 시합도 얼마든지 출전할 수 있어요. 곧 사범님이 오시니까, 구경하고 계세요.”
“네~”

도장에는 주로 애들이 있었고, 간혹 중고등학생들은 건강관리 차원에서 수련 중인 것 같았다.
‘아, 여기서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중에 사범이라며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었다. 그분은 과거에 선수생활을 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지금은 매일 일 마치고 개인훈련을 위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선수로서 정말 이런 명장을 만났던 것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자하신 관장님, 착하고 용맹한 체육관 후배들...
그 다음날부터 사범님과 나의 훈련은 시작되었고 6개월 정도 될 무렵 첫 시합 출전. 그리고 2~4개월 간격으로 시합을 가지면서 점점 자신감을 쌓아갈 무렵에 대한격투기연맹 상위랭킹(현재, 대한격투기연맹 미들급 챔피언)선수의 대전 상대로 내가 지목되었다. 난 그 당시, 겨우 3전의 경험뿐이어서 잠시 망설였지만, 어차피 내가 격투기를 시작한 것은 다만 싸우기 위해서였으니 오래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 시합을 앞두고 사범님은 더욱 혹독한 훈련 프로그램을 짜주셨고, 매일 밤 이어지는 지옥 같은 훈련과 스파링에 시달렸고, 주말에는 야외로 나가 공원이나 공동묘지 등에서 체력단련, 담력 훈련도 빠지지 않고 하게 되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내 평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파이터 인생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링 위에 섰을 땐 정말 다리가 후들거렸다. 링 코너에서 늘 하던 기도를 시작했다.
‘난 맞아도 싼 놈이다. 맘껏 때려봐라. 만약 나를 녹다운(knockdown) 시키지 못한다면, 너를 녹다운 시킬 것이다.’ 라며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 사범님이 옆에서 한마디 건넨다.
"O O O씨, 공 울리거던 링 가운데서 10초만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되요. 아니면, 어제 나랑 연습했던 사이드스텝으로 3라운드 내내 상대방 빙빙 도세요. ㅋㅋ”
그동안 고생했으니 시합에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라는 뜻은 알겠지만, 웃음이 나지 않고 내 마음은 더 매서워지기만 했다. ‘록키’ 라는 영화를 보면, 학교에서 맞고 다니던 아들에게 아빠가 하던 대사가 있다.
‘아들아, 나는 링 위에서의 수십 명과 싸워왔지만 아직도 링에 설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누구나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속의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았었지만 몸소 이렇게 체험 할 줄은 몰랐다.
1라운드 공이 울리자 상대는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전진스텝으로 거침없이 주먹을 뻗었고, 그 와중에 하나가 내 안면에 적중했지만, 침착하게 클린치로 위기를 모면했다. 평소에 내게 존댓말을 쓰시던 사범님의 격앙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야! OOO! 주먹 짧게, 짧게! 그리고 가드 올려!......야! OOO! 여기 안 봐?!”
“OO형! 가드 올려요!”
시합 중엔 나만 흥분하는 게 아니다. 링 밖에서 소리쳐주는 이런 동료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2라운드부터는 전략을 바꾸어 적극적인 인파이트를 구사하던 중 기회가 왔다. 그의 목이 내 손에 잡혔고(뺨 클린치), 본능적으로 그의 복부에 니킥(Knee Kick)을 꽂아 넣었다.
상대는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다운이 선언되었고 그 후로도 나는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3라운드 끝날 때쯤에는 한여름 야외특설 링에서의 경기라서 그런지, 폭염에 땀이 비 오듯이 나면서 심장은 곧 터질 것 같았다. 사실 주먹들 힘도 나지 않았지만 훈련 때 가끔 하던 사범님의 어록 ‘폭염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을때 주먹한번 더 뻗는 자가 이기게 된다.’ 그 말을 되새기며, 주먹과 킥을 있는 힘껏 뻗었다. 나중에 비디오로 다시 봤을 땐 거의 슬로비디오 수준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에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어쨌든, 그 후 연이은 시합에서 승리를 하면서 학창시절 한 번도 받지 못했던 트로피가 내방에 쌓여갈 무렵 좋은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실전무술연합회에서 주관하는 격투기교류전인 ‘크레모아’ 라는 대회의 챔피언결정전에 출전 통보가 왔다. 그 시합에서 이기게 되면, 그 단체의 크루져급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난 다만 싸우기 위해서 시작한 격투기였지만, 몇 년간 선수생활을 해오면서 그 이유들은 어느 듯 퇴색되어 가고, 벨트에 대한 욕심만이 강하게 자라나 있었다. 사실 시합이 잡히면, 그 시합보다는 링에 오르기까지의 고된 훈련을 어떻게 견뎌낼까 걱정이 앞선다. 이번에도 역시 사범님의 프로그램에는 한 치의 아량도 없었다. 시합당일 상대선수를 봤을 때, 체격이 나보다 좋았지만, 상대의 다리만 집중적으로 공략한 끝에 2라운드 초반에 TKO승으로 벨트를 허리에 두르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밥그릇이었을까? 그 후로 1차 방어전을 준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훈련할 때마다 힘들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마도, 뭔가 강렬한 동기의식을 상실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범님도 처음엔 이제 더 큰 무대로 옮겨 가야한다고 말했지만, 내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해서인지, 훈련도 예전처럼 악착같이 함께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1차 방어전 시합당일에는 사범님 없이 관장님과 체육관 후배들이 나와 함께 시합장으로 향했다. 그 당시에는 링 밖에서 목청껏 지시를 내려주는 사범님의 목소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주눅 들지 않고 평소 때처럼 링 위에 올랐지만, 이미 내 눈은 전사의 눈빛이 아니었다.
1라운드 초반에 방심하고 들어가다 상대가 뻗은 카운터펀치에 좌측 눈을 맞은 후 상대가 5~6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이미 좌측 눈의 안와저부골절(Blow-out fracture) 및 안구가 함몰되었었다. 1라운드 내내 특별한 공격도 못하다가 2라운드를 앞두고, 사범님의 작전지시가 너무나 필요했지만, 혼자 생각해야했다. 역시, 록키라는 영화 중에 록키가 심하게 맞은 후 1분 휴식 시간에 코치와 하는 대화가 생각났다.
‘상대가 3개로 보여요’
이 말을 들은 코치는 이를 악물고 록키에게 한마디 건넨다.
‘그럼 가운데 녀석을 때려라!’
나도 상대가 5개로 보이니, 역시 가운데 녀석을 때리면 되는 것이다. 2라운드 공이 울리고 다시 주먹을 주고받았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다. 5명으로 겹치는 상대를 보고 있자니 어지러워서 서있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현실에서는 라운드 내내 맞기만 하다가 겨우
2라운드를 넘기고 내 코너로 돌아왔다. 얼굴이 코피로 범벅이 되고 한쪽 눈은 안구함몰에 부어서 반쯤 감겨진 얼굴을 보고 심판이 다가와서 한마디 건넸다.
“이번에는 이쯤에서 포기하시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관장님도 한마디 하셨다.
“어떡할래?”
나도 순간 약간 갈등을 하는 중에, 이미 늦었지만 그때서야 예전의 초심이 떠올랐다.
‘난 아직 쓰러지지 않았지 않는가? 오늘이야말로 내가 시원하게 맞는날인가 보다. 그렇지만나는 체급 상 한방이 있다.’ 85~90Kg 이상의 체급에서는 파이터라면 누구나 한방은 있다.
“계속 하겠습니다. 관장님도 절대로 수건 던지지 마세요.”
3라운드 내내 피할 틈도 없이 계속 맞으면서 간간히 주먹을 뻗긴 했지만, 허우적대는 주먹을 상대가 맞을 리 만무했다.
시합을 마치고 상대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후 링에서 내려오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후 병원에서 4시간정도의 수술을 받고, 안와골절과 안구함몰이 너무 심해서 영구적인 인조뼈를 눈 아래에 두 개나 끼워 두었고 안와신경(inf. orbital nerve)의 손상으로 한쪽 안면의 감각이 없어지는 후유증을 가지게 되면서, 무에타이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갔다.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래...링 안이건 링 밖이건 이제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내가 혹시 다시 싸울 일이 생긴다면 인조뼈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내 약해 빠진 한쪽 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일 것이다. 내 허리에 둘러졌던 챔피언벨트도 자기 위안일 뿐, 남에게 무심코 준 마음의 상처와 나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구나. 되돌릴 수 없는 잘못에 대해서는 짐을 진채로 속죄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런 마음의 짐이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지지 않도록 항상 말과 행동을 절제해야 하겠다. 그리고 이 챔피언벨트의 주인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병원 퇴원하면서 한마디가 더 생각이 났다.
‘그래도 챔피언타이틀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금할 길이 없구나, 윽!’
그로부터 2년여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일렉기타를 연습중이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기타 줄을 튕기며 가끔 꿈을 꾼다. 언젠가 직장인밴드를 구성하여 멋있게 공연을 하리라. 그리고 OOOO전문의로서 좀 더 밝은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고 이해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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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30 12: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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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소설 같네요...
좋은 경험...부럽습니다.
ㅍㅍ  2010-07-30 14: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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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멋지십니다~~ 그런 악바리 근성,, 대단하시네요~~ 거기다가 또 의사시네요!!

님같이 멋진 남자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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