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웅진 결혼정보회사 선우 사장맞고 내돈 갚을래' 이웅진 결혼정보회사 선우 사장(36)의 눈에 불이 번쩍 났다. 코피가 줄줄 흘렀다.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화장지 장사 등을 전전하다가 간신히 사업이라고 시작한 것이 도서체인점이었다. 사업이 좀 잘 된다고 무조건 확장한 것이 화근이 됐다. 몇 년도 안돼 몇 천만원의 빚을 졌고 이 때문에 채권자들이 몰려들었던 것. 91년 26살 때였다. 그는 이 빚을 다 갚고 재기하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책을 팔러 다니고 밤에는 서울 강남 룸살롱에서 일했다. 매달 500만원은 손에 쥘 수 있었다. 불과 몇 개월만에 빚을 갚았다. 손에 쥔 것은 단돈 1만원.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를 찾아가 책상 하나를 빌렸다. 중고 책상을 사고 전화기 두 대를 외상으로 들여놓았다. '아이디어뱅크'인 그가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린 것이 바로 결혼정보 제공업이었다. 사업은 잘 돼 나갔다. 하지만 또 다시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94년엔 직원 30명에 100평에 이르는 사무실을 쓸 정도가 됐다. 돈을 끌어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결혼정보회사 선우(선우의 전신)는 94년 연말 또 다시 부도를 맞았다. 부도 금액은 1억5000만원.
그러나 그는 이때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 도망가버리면 당장은 해결이 쉽겠지만 재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채권자 80명을 일일이 만나 설득에 나섰다. '재기 해서 돈을 갚겠다. 내가 만약 처벌받는 것으로 끝난다면 당신들은 아예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지 않겠느냐'는 이씨 설득은 주효했다.
간신히 처벌에서 풀려난 이씨는 회사 직원을 2명으로 줄이고 사무실도 4평으로 축소하는 등 새롭게 시작했다. 수입 범위 내에서만 지출하고 절대 돈을 꾸지 않았다. 채권자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고 한 푼씩 갚아나갔다. 결국 3년만에 1억 5000만원을 갚을 수 있었다. 빚지지 않는다는 경영원칙을 그는 아직까지 실천하고 있다.
IMF 이후 그의 전략은 더욱 빛을 발했다. '남들은 돈을 구하러 돌아다니는데 우리 회사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더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됐지요.' 다행히 90년대 중반부터 결혼정보사업이 본격 불붙기 시작했다. 경쟁업체는 수백 곳으로 늘어났지만 결혼정보시장은 더욱 커졌다.
독특한 아이디어미팅 구상
내실 경영이라는 목표를 세운 후 이 사장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동서화합을 위해 제안한 '영호남 카풀 버스미팅', 60세 이상의 홀로된 노인을 위한 '효도미팅, 귀순자와의 남북커플 4쌍을 탄생시킨 '남남북녀 미팅' 등 화제가 됐던 이벤트들이 그의 작품이다. '알뜰 경영을 하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한다' 는게 그의 얘기다. 독특한 이벤트로 화제를 모으면서 회사도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 91년부터 97년까지 439쌍을 맺어준 후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98년 134쌍, 99년 281쌍, 작년에는 450여쌍을 결혼으로 골인시켰다.
물론 그가 벌이는 일마다 히트치는 것은 아니다. 몇 년전 대학로에서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오픈한 미팅카페는 6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이 사장은 당시 '아이디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장소가 나빴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번 실패하면 그대로 주저앉지만 그는 방법을 바꿔서라도 성공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 때문에 대학진학을 미뤄왔던 그는 올해 초 성균관대 인문사회계열 2001학번 신입생이 됐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라는 그의 지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