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세계적인 명문대를 나온 40대 후반 딸의 결혼을 위해 한국을 찾은 아버지. 한 사람의 배우자를 찾기 위해 시작된 영화 같은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10시간을 날아온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 80세가 넘은 한 노인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희끗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적지 않은 풍파를 겪으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이 첫인상에서 느껴졌다.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10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서 한국까지 왔다. 부산이나 대전, 대구에서 자녀 결혼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부모님은 많다. 하지만 해외에서 직접 한국까지 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가 내게 한 부탁은 단순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에게는 40대 후반의 딸이 있었다. 세계적인 명문대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은 뛰어난 인재였다. 능력도, 인품도 부족할 것이 없었지만 결혼만은 이루지 못했다. 딸은 한국 남성과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고, 그것은 아버지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인생에서는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었다. 멀리서 찾아온 아버지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회원 수천 명, 그리고 12명의 남성 가장 중요한 조건은 분명했다. 40대 후반의 여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학력도 어느 정도 맞아야 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해외로 건너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회원 수천 명을 검토한 끝에 조건에 맞는 남성들에게 연락을 보냈다. 연락이 온 사람은 12명. 나는 그 12명을 모두 직접 만났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들고 효율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최종 후보는 세 명으로 좁혀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A였다. SKY 대학을 졸업했고 안정적인 공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인상도 좋았고 말도 조리 있었다. 외형적인 조건만 놓고 보면 가장 이상적인 후보였다. 다만 사람을 오래 만나온 경험으로 보니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자기 기준이 분명했고 쉽게 내려놓지 않는 성격처럼 보였다.
그래도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욕심을 조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는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직접 그를 데리고 여성이 있는 나라로 향했다. 비행기표도 내가 끊었다. 그 정도 정성이라면 나중에 아버지가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공항 억류와 하얀 나비, 좋은 예감은 빗나갔다 하지만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남자 둘이 함께 입국한다는 이유로 공항에서 두 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 밖에서는 여성과 가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그녀를 만났다.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이었다. 왜 한국 남성을 만나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첫 만남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는 호텔을 예약해 두었고,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도록 2박 3일 일정을 준비했다. 저녁에는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그 집은 지금도 기억난다. 넓은 정원과 수영장이 있었고, 식탁에는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손님을 맞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딸의 결혼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집 마당을 둘러보다 하얀 나비 두 마리가 나란히 날아가는 모습도 봤다. 괜히 마음속으로 '좋은 징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A의 마음이었다. 처음부터 조금 미온적이더니 시간이 갈수록 더 소극적이었다. 딸과 단둘이 데이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데이트 대신 카지노를 선택한 남자 둘째 날 아침에는 호텔에서 A가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래층에 있다는 것이었다. 내려가 보니 카지노 게임장과 비슷한 곳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됐다.
'아, 이 사람은 아직도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는구나.'
먼 나라까지 배우자를 만나러 와서도 데이트보다 게임이 먼저였다. 조건은 좋아도 결혼이 어려운 사람들의 공통점을 나는 그동안 수도 없이 봐 왔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아버지와 딸은 A를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결혼을 시켜줄 수는 없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A는 어렵겠다. 이제 플랜 B다.‘
두 번째 남성, 처음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두 번째 후보를 다시 만났다. 그는 첫 번째 후보와 달랐다. 여성과 나이도 같았고, 무엇보다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인상도 편안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딸을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만나보자는 제안이었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식사도 하고, 대화도 이어졌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나도 중간에 함께 식사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한 일이 있다. 기념이라며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여성은 그게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식당 선택도 아쉬웠다. 지금 같으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갔을 텐데, 당시에는 조선일보 사옥 근처 삼겹살집으로 안내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그런 것보다 서로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결국 그는 한국을 떠났다 얼마 후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했다. 남성은 결국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그녀가 있는 나라로 떠났다. 얼마 뒤 그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대표님, 잘 지내시죠? 사례금으로 100만 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것이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연락이었다. 이후 전화를 걸었더니 번호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며칠 뒤에는 아버지에게서 봉투도 도착했다. 나는 해외를 오가며 들인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며 봉투를 열었다. 솔직히 조금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금액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아버님, 제 가치가 이것밖에 안 됩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처음 약속한 금액이 그거 아닙니까?'
순간 웃음이 터졌다. 역시 평생 사업을 해온 분다웠다. 끝까지 계약은 계약이었다. 그렇게 한 편의 영화 같았던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
결혼은 결국 마음을 내려놓는 사람의 몫이었다
가끔 첫 번째 후보였던 A가 생각난다. 그때 조금만 마음을 내려놓았다면 그의 인생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지금 그는 직장에서 은퇴했고, 아직도 혼자라는 소식을 들었다. 35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며 느낀 것이 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조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