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 너머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 이 대표님이신가요? 상담드릴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목소리로 보아 60대쯤으로 느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자녀분 결혼 문제인가요? 아니면 선생님 본인 상담이신가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버님이요?”
“네. 저는 60대가 넘었고요. 아버지는 80대 중반이십니다.”
나는 바로 물었다.
“아버님이 좋은 분을 만나셨으면 하시는 건가요?”
“네. 혼자 계신 지 오래됐습니다.”
“아드님, 잘 전화하셨습니다. 홀로 된 부모님이 외롭지 않도록 좋은 이성친구를 찾아드리는 것도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그제야 남성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한국전쟁 때 장교로 계셨고요. 이후에는 공직생활을 하시다가 퇴직하셨습니다.”
“어머님과는 언제 사별하셨고요?”
“5년이 넘었습니다. 그 뒤로 계속 혼자 사십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아주 건강하십니다. 혼자 생활하시고 거동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자녀 분은 몇 분이세요?”
“저 하나, 그리고 딸 셋입니다.”
“1남 3녀군요.”
“네.”
“80대라고 해서 사람을 못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시고 본인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좋은 분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연세 많은 어머니가 계셔서 압니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까지 늙는 건 아닙니다.”
“제가 괜히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군요.”
“그럼요. 아버님 모시고 한번 오세요.”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하루쯤 지나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대표님… 아무래도 이번 상담은 못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좋은 분을 만나셨으면 합니다. 혼자 계시는 게 늘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런데요?”
“동생들이 펄쩍 뜁니다.”
“왜요?”
“어머니 돌아가신 지 이제 5년밖에 안 됐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아버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아버지는 제가 말씀드리면 만나실 것 같아요. 그런데 동생들이 너무 반대합니다. 괜히 이 일로 집안에 불화가 생길까 봐요.”
아들의 난처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족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전화까지 드려놓고….”
“죄송할 일 아닙니다. 나중에 가족들 마음이 바뀌면 그때 다시 연락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그와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카톡에 갑자기 그 아들이 검색됐다. 가볍게 짧은 안부를 보냈다.
“선생님, 건강하시죠? 아버님도 잘 계시고요?”
한참 뒤 답장이 왔다.
“대표님,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이어진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그냥 혼자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대표님 찾아뵙고 아버지께 좋은 분을 만나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많이 후회합니다.”
“동생들도요?”
“네. 그때 그렇게 반대했던 동생들도 지금은 많이 후회합니다.”
나이가 들면 이성을 만나고 그리워하는 마음도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녀들이 모두 자기 가정을 꾸리고 떠난 뒤에는 함께 밥 먹고, 전화하고, 산책하고, 안부를 물어줄 한 사람이 더 절실할 수도 있다.
이성을 만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80대라고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다.
부모의 남은 인생을 자녀의 기준으로만 판단하지 말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해드릴 수 있는 일에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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