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년 동안 수많은 남녀의 만남과 결혼을 지켜봤다. 그 사이 배우자를 보는 기준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남편의 직업을 따라 아내의 거주지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이 해외근무를 하면 아내가 따라가고, 남편의 직장과 생활을 중심으로 가정이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전문직 여성, 고소득 여성, 자기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여성이 많아졌다. 결혼한다고 해서 자신의 직업과 삶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조건도 달라지고 있다.
아내가 잘나가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는 남자. 아내의 일을 존중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생활도 조정할 수 있는 남자.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남자를 ‘외조남’이라고 불렀다.
30여 년 전만 해도 외조남 이야기를 하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다는 말을 들었다. 10여 년 전에는 이제 외조남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실제 결혼 현장에서 이런 남성을 원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의사, 변호사, 교수, 기업인, 공무원, 해외 주재원처럼 자신의 경력과 활동 영역이 분명한 여성일수록 그렇다.
좋은 직업을 가진 남자만 찾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남자를 찾는다.
오래전 기억나는 여성 외교관이 한 명 있다. 30대 후반이었다. 국내 최고 명문대를 나왔고,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서기관 직급의 유능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결혼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 근무가 얼마 남지 않았고 몇 달 뒤에는 해외 공관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내가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서 근무하게 되나요?”
“아직 미정인데요. 험지가 될 수도 있어요.”
“험지라면요?”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같은 곳이요.”
“아프리카요?”
“외교관들은 순환근무라 2~3년 단위로 옮겨 다녀야 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좋은 여성인데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남성이 거의 없었다. 전문직 남성을 만나게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자신의 직업을 두고 여성을 따라 해외를 옮겨 다닐 남성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의 만남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예상대로였다.
“결혼하면 해외로 함께 갈 수 있으세요?”
남성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난감해했다. 자기 직장이 있고, 자기 생활이 있었다. 여성을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해외로 따라가는 문제는 또 달랐다.
결국 그 여성의 소개는 그렇게 끝났다. 그때 나는 많이 미안했다. 그 여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유능하고 자기 길이 분명했기 때문에 당시의 결혼문화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결혼문화에서는 오랫동안 남편의 직업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관습 속에서는 사회활동이 활발한 여성이 오히려 배우자를 찾기 어려워지는 역설이 생긴다.
지금 그 여성 외교관을 다시 소개한다면 나는 전혀 다르게 접근할 것이다. 처음부터 묻는다.
“아내의 직업 때문에 해외에서 몇 년 살아야 한다면 가능합니까?”
“두 사람 중 아내의 일이 더 중요한 시기가 온다면 생활을 조정할 수 있습니까?”
“아내가 나보다 더 많이 벌거나 사회적으로 더 잘나가도 괜찮습니까?”
예전에는 이런 질문 자체가 낯설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외조남이 많아지는 시대다. 과거에는 남자가 경제력을 갖고 여자가 내조하는 모습이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는 부부 중 누가 더 많이 벌고, 누가 더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느냐보다 서로의 일을 어떻게 지지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외조라고 해서 남자가 직업 없이 집안일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 일이 있으면서도 아내의 성장을 경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내에게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함께 방법을 찾는 것. 육아와 가사를 어느 한 사람의 몫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 필요하다면 프리랜서나 시간 조절이 가능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도 유지하는 것. 외조남이라고 해서 자기 삶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내려놓고 나중에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한쪽의 활동이 가정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 시기에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가정을 재편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다고 해서 자기 자신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결혼은 누가 누구를 따라가는 관계가 아니다. 잘되는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고, 서로 더 잘되게 만드는 관계다.
30여 년 전에는 외조남을 이야기하면 너무 앞서 간다고 했다. 10여 년 전에는 외조남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이제는 다르다. 외조남이 특별한 남자가 아니라, 좋은 남편의 한 유형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배우자 찾기에서도 이런 남자의 가치는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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