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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는 결국 현실 속의 이야기를 반영한다.
90년대 후반, 당시 명동 롯데백화점 건너편에 회사가 있을 때였다. 50세쯤 된 한 여성을 만났다. 지인의 소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오래 한, 지적이고 품위 있고 능력 있는 여성이었다. 결혼할 의지도 강했다. 나도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90년대만 해도 50대 여성이 만날 수 있는 미혼 남성은 거의 없었다. 재혼 남성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이상은 높았다. 결국 몇 번의 만남도 갖지 못한 채 소개받기를 포기했다.
그녀가 했던 말 하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살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그녀는 회사에서 은퇴한 뒤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거의 혼자 지냈다.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왕래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그녀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가족이 있었다면 초기부터 치료를 받고 집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혼자였다.
결국 내가 아는 분이 운영하는 요양원에 들어갔다. 그 요양원 원장은 오래전 그녀를 처음 내게 소개했던 분이다. 그분 역시 사별 후 혼자가 됐고, 내가 가끔 남자친구를 소개해주면서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져왔다.
그분에게 그녀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녀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온 분이었다. 부모에게 효녀였고….
그런데 그 긴 인생의 끝에 남은 것이 외로움이라니. 요양원 원장님의 아들도 내가 결혼시켰다. 그래서 가끔 그분에게 이런저런 인생사를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요양원에서 한 남성과 특별한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그 남성 역시 치매를 앓고 있었다. 부인과 사별한 뒤 10여 년을 혼자 살다가 요양원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원장님이 말했다.
“여기 함께 지내는 부부들도 있는데, 그분들보다 더 부부 같아요.”
“그래요?”
“식사도 같이 하고, 취미활동도 같이 하고, 치료도 같이 받아요. 잠만 따로 자는 거죠.”
그녀는 많은 기억을 잃었다.
그런데 알게 된 지 불과 2년 정도 된 그 남성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그녀는 마침내, 50세에 만나지 못했던 인연을 75세에 만난 것이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한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름답게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망각 속에서 찾아온,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잘되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원장님께 부탁했다.
“이제 그분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주세요.”
그녀에 대한 내 기억도 여기서 멈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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