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평 연립 단칸방 신혼살림 3~4년 지나 서로 이해했죠"가난이 너무 싫었다. 일찍부터 돈을 벌고 싶었다. 그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집을 나와 건국대 근처 화양리에서 첫 사업체인 '동네 만화방'을 차려 독립했다. 코묻은 돈들 이 조금씩 들어왔지만 얼마 안돼 '동네 주먹'들이 만화방을 점령했다. 같이 어울려 화투도 치고 술, 담배, 주먹 쓰는 법도 배웠다. 그러나 담배 연기 자욱한 만화방에 아이들을 보낼 부모들은 별로 없었다.
만화방이 문을 닫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표적 결혼정보회사인 선우의 이웅진(38) 사장의 첫 사업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학원을 다니며 종로 일대에 화장지판매 사업을 다시 벌였다. “기업체 사무실에서 화장지 구입은 대개 경리 담당 여직원이 합니다. 저는 사무실별로 화장지를 판매한 날짜를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화장지가 떨어질 때쯤 배달해주었더니 좋아하더라고요.” 남들이 리어카에 화장지를 실어 길거리에서 오는 손님'만 받을 때 그는 종로 일대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을 '네트워크화 해 단골 고객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결혼한 부인 최은영씨(38)도 일찌감치 '종로 여직원 명단'에 올라 있었다. 자본금 200만원을 들여 시작한 그의 세 번째 사업인 독서회 (책 대여 사업)는 화장지 판매를 통해 알게 된 종로 일대 '여직원 DB'가 가장 큰 재산이었다.
그러나, 경험 부족으로 빚만 3000만원 지고 또 실패했다. 새로 시작한 결혼정보사업은 돈 버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미혼 선남선녀들의 회원 가입이 급증하자 그는 신이 나서 사무실을 100평으로 늘리고 직원도 30명까지 늘렸다. 신문광고, 광고 전단지 배포도 외상으로 마구 뿌렸다. 또 실패였다. 회사를 키우겠다는 욕심만 앞섰고 내실을 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94년 말, 8000여만 원의 부도를 냈다.
부도 직전에 시작한 이 사장의 신혼 살림은 '25평 연립' 처가의 방 한 칸 아내가 결혼 전 쓰던 방이 이들 부부의 신혼방이었다. 신혼 초 3~4년 동안 이들 부부는 한 달에 평균 20번은 싸웠다. “도대체 늦잠 잔다고 아침을 안 해주는 아내도 있냐." (남편), "회사일이 안 되는 게 내 잘못이냐, 왜 나한테 늘 화풀이냐.”(아내) 이 사장은 "하도 자주 싸우는 바람에 몇 번 '위기 상황' 직전까지 간 적도 있지만 몇 년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잠꾸러기' 아내를 둔 때문에 요즘도 아침을 못 먹고 나오는 날이 많고,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을 일요일에도 회사에 빼앗기지만, 이들 부부는 “이제는 이런 사소한 일로는 다투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4700여명이 결혼정보회사 선우를 통해 결혼에 골인했다. 이 사장은 “4월 중순쯤 결혼 5000명 돌파 기념으로 2000명 단체미팅 행사를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좌절을 맛본 덕분에 그는 회사의 내실을 차곡차곡 다지는데 지금도 주력하고 있다. 흔한 승용차도 그는 아직 굴리지 않는다.
한 가지 '외도'라면 '01학번으로 만학(學)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 그는 성균관대 사회학과 3학년이다. “2학년 때 두 학기 내리 학사경고를 받았어요. 작년에 회사 일이 워낙 바빠 공부를 거의 못했거던요. 이번 학기는 정말 정신 차리고 공부할 겁니다.” 그는 지금 학생으로서 '벼랑 끝' 위기에 몰려 있다. 이번 학기마저 'F학점'을 받으면 곧바로 제적이다.
직원 80여명을 거느린 그는 아직 '성공한 기업인'이 아니다. '회원 관리보다는 언론 플레이에 더 신경 쓴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또 다른 회사들보다 먼저 전문직 종사자나 특수층 자녀들만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명문가클럽'을 운영,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결혼을 조건만으로 할 수 있느냐." 결혼정보회사를 바라보는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냉랭하다. 이 역시 그가 아직 넘지 못한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