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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 거부감 문화차이 절감...이번 이벤트를 주최한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이웅진 사장은 '문화의 차이를 절감했지만 그래도 남녀의 만남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귀국 후 소감을 밝혔다. 이사장은 '한국의 분단 2·3세대들이 직접 부모 세대의 빚을 갚는 한편 나아가 월드컵 이후 한결 친근해진 양국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젊은 세대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자는 것이 행사의 취지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자유분방한 한국 연애문화와 달리 서로 손을 잡는 것도 어려워하는 터키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행사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현지 언론들조차도 자유연애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 문화의 차이를 절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사장은 이어 '남자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 이슬람권 여성들에게 직접 짝을 고를 수 있는 단체 미팀은 처음이었을 것이며 한국 남자들에게도 터키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기회가 됐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이사장은 다음달 중순쯤 터키 남자들과 현지 언론을 한국으로 초청, 한국 여성들과의 미팅을 주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매 년 2002 한·일월드컵 경기에서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이 열렸던 6월 29일을 즈음해 한국과 터키 남•녀의 만남을 정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월드컵을 계기로 '형제의 나라'임을 새삼 인식한 한국과 터키, 그런 감동의 기억이 여운처럼 맴돌고 있던 어느날, 한국 청년 10명과 터키 아가씨 10명이 만남의 장을 가졌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곳. 역사의 도시 터키 이스탄불에서 있었던 양국 청춘 남녀의 3일간의 이색 데이트에 동행했다.
◇ 정장 남자와 캐주얼 여자 = 지난달 29일 아침 이스탄불 스위스호텔, 역풍을 가르며 12시간 넘게 하늘을 날아온 청년들이 정장차림에 긴장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약속시간이었던 10시가 조금 넘으면서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여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측에서 짝을 지어 한 자리에 앉힌 후에야 눈 맞추기도 어색해하던 남녀는 서로를 소개했다. '월드컵 때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남자를 만나보고 싶었다'며 터키 아가씨 바샥(21)이 첫 인사를 건넸고, 한국 남자 양우주씨(29)는 “아직 터키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분들을 만나는 순간 좋은일이 있을것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화답했다.
버스 옆자리에 앉기가 부담스러워 남자, 여자끼리 따로 앉은 채 창밖만 바라보며 어디론가 이동한 그들이 내린 곳은 군사박물관, 한국전 당시 터키 갈라타사라이 고교생들이 '베라베리즈(우리는 하나)'라는 현서를 써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했다는 터키 국기를 보며 이들 신세대는 왜 한국과 터키를 '캉카르데쉬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하는지를 알았다.
몸에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조금씩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 젊음이라는 코드 = 다음날.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연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하나둘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었다. 마르마르해의 해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를 때는 짝을 지어 앉는 커플도 있었고 주술사의 농간으로 18살에 세상을 떠난 이슬람 공주의 이야기가 깃든 바다 위에 떠있는 루멜라성, 터키의 전통시장 그랜드바자로 이어지는 팀별 데이트 시간 후에는 웃는 얼굴이 하나둘 늘어났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떠나 나름의 공통된 코드가 있는 듯하다. 저녁 식사 후 분위기는 한결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한국 남자들 사이에서 '나이트에 가자'는 얘기도 나왔다. 그때 식당에 흘러 나오는 흥겨운 음악, 밤 9시30분 통금을 지키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혼이 난다며 자리를 뜨려던 터키 아가씨들이 노래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고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식당의 테이블이 한쪽으로 치워졌고, 터키 아가씨들이 고난도의 춤실력을 과시했다. 이틀 동안 거의 말이 없던 일크누어(23)는 상체를 고정시킨 채 히프만 요란하게 흔드는 터키 전통춤 밸리댄스까지 선보였다.
◇부침개와 커피점(占) = 짝을 이룬 사람들끼리 자유 데이트가 있기로 했던 마지막날. 분위기가 전날 밤과 사뭇 달랐다. 터키 여자 2명이 별 다른 통보도 없이 행사에 불참한 것이다. '왜 안나왔을까'를 두고 한국 남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고, 누구누구의 행동을 비판하는 소리도 섞여 나왔다.
결국 데이트는 남자 다섯, 여자 넷의 팀별로 진행됐 다. 성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 톱카프 궁전. 예상밖의 난관을 만난 남녀를 다시 이어준 것은 역사책에 나오는 이 유물들이 아니었다.
유적지를 돌아본 후 점심시간. 터키 여자들이 권한 감자와 치즈로 만든 '고다메'라는 전통요리는 한국 남자들에게 부침개 맛을 연상시켰고 터키 여 자들도 '부침개'란 한국 요리 이름을 알게 됐다. 또 터키 커피를 마신 뒤 잔을 뒤집어 그날의 행운을 보는 커피점은 이들 사이의 대화의 끈을 다시 이어졌다.
◇ e메일을 기다리며 = 이스탄불에서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공항으로 향하던 날. 중산층 이상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터키 일간지 밀리 에트에 '한국 청년들의 결혼장난'이란 제목의 르포 기사가 실렸다. 마지막날 행사에 불참한 2명이 잠입취재를 위해 투입된 기자들이었던 것이다. 이 신문은 '참가 여성들은 아는 사람들로부터 설득되어 온 여성들로 호기심과 공짜 이스탄불 여행이 목적이었다'며 시종일관 비꼬는 말투로 3일간의 데이트를 보도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항상 명랑한 행동으로 분위기를 만들었던 세르피어(24)는 마지막날 정리 자리에서 '옛날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런 자리에 참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이슬람 여성들도 편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질투가 많은 터키 남자에 비해 한국 남자들은 자유롭고 편안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 한 한국 남자는 대학생 일쿠누어로부터 e메 일 한통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 헷갈리지 않게 너의 사진을 보내줄 수 있겠니. 한국인에 대해 기억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어. 너의 e메일 기다릴게' 이스탄불 곳곳 터키인들의 생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월드컵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듯했다. 이스탄불 주요 관광지의 하나인 재래시장 그랜드바자에서 만난 한 가 뽕가게 점원 모스쿠시 아흐메드(22·사진)는 월드컵 당시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 채 서툰 한국말로 '한국 사람과 터키 사람은 친구다' 라며 호객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게로 들어가자 한국인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인과의 친근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유럽 10대 백화점에 속한다는 아크메르키즈의 한 문구점에서도 한국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구점 종업원 스벨 아부샤르(26·여)는 '한국 문구는 일본 것에 비해 값이 훨씬 싸고 품질도 좋아 물건을 구입해간 손님들의 불편이 거의 없다'면서 '월드컵 이전에 점유율이 25%정도였는데 최근에는 거의 50%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드컵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전우형 과장은 '터키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라며 '지난 7월 기준으로 지난해에 비해 수출이 2.7% 증가했으며 월드컵 이후에는 매 월 17% 정도의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월드컵 당시 대형 전광판을 동원한 응원전을 지켜본 터키인들 사이에서 한국이 디지털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커졌으며 한국을 따라잡아야 할 모델로 제시하는 이들도 적지않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이스탄불의 이스티크랄 거리에서도 터키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외국책 전문서점 직원은 '월드컵 이후 한국에 관한 책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특히 한 한국인 유학생이 영어로 쓴 '한국 이야기'라는 책과 6·25전쟁 당시의 한국을 다룬 책이 인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적·문화적 교류는 아직까지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미약한 상황, 현재 터키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500~600명 남짓. 그중 300~400명은 이스탄불에 살고 있다. 또 터키거주 한인들 중 실제 현지에 정착하고 생업을 꾸리는 사람들은 20여 가족에 불과한 상황이며 대부분이 지사나 상사에 파견된 이들이다.
터키 한인회 정지섭 회장은 '터키는 문화적으로도 우리와 다른 점이 많아 한인들이 정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곳이지만 월드컵 이후 터키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며 '한국을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전통 문화와 영화 등 대중문화를 소개하는데 더욱 노력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