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선우의 이웅진사장은 선남선녀 5,000명의 짝을 찾아준 이 시대 최고의 중매쟁이
두 번 망한 뒤 성공…“이혼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책상 하나, 전화기 두 대로 91년 문을 연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이제는 직원 100명을 거느린 대규모 사업체로 발전했다. 사업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가운데 출발, 10년이 지나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극장서 껌팔이 이 사장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이 사장은 일찍 철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돈을 벌겠다 는 생각으로 극장에서 껌팔이를 시작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만화방을 차렸다. '일찍 사회에 발을 내딛으니 남보다 세상을 일찍 이해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돌이켜 보니 정상적인 삶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200만원을 가지고 시작한 만화방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후 동네 불량배들의 손에 넘어가게 됐고 이 사장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낮에는 화장지를 팔고, 밤에는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남다른 장사수완을 지닌 그는 화장지 판매를 위해 회사 경리직원들을 공략(?)했다. '회사의 기물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경리직원 아닙니까? 당연히 효과가 좋았습니다.'화장지가 떨어질 때를 예측해 미리 배달해 주는 전략으로 많은 단골을 확보할 수 있었다.
화장지 판매로 재미를 본 그는 다른 사업을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도서대여점을 시작한 것이다. '화장지 판매를 하면서 여자 경리직원들과 친해졌죠. 책을 읽고 싶은데 책값이 비싸 구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이동식 도서대여점은 1 년만에 3,00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연 수 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회원확보를 위해 도서대여점 11개를 인수하게 된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어린 나이에 무리한 사업확장을 했던 그는 얼마 후 부도를 맞아 3,000만원이라는 빚을 떠안았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낮에는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밤에는 룸살롱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된다.
도서대여점 망한 후 룸살롱 웨이터로 일해
열심히 일한 덕에 6개월 만에 빚을 청산한 그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화장지 판매와 도서대여업을 하며 알게 된 사람들을 밑천 삼아 91년 결혼정보 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불법 폰팅이 성행하고 있어 결혼정보회사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이 많았죠. 사업 초기 몇 년간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신설동에 사무실을 냈지만 회원이 모이지 않았다. '근처 예식장에서 하객을 가장해서 들어가 도둑 점심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많았죠. 심지어 여직원 월급 줄 돈이 없어 카드깡으로 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회사는 차츰차츰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결혼정보회사는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광고 전단지를 외상으로 뿌리다가 또 다시 부도를 맞았다. 8,000만원의 빚을 진 그는 결혼 전 아내가 쓰던 방에 들어가 처가살이를 하게됐다.
96년 부도를 맞았을 때 아내는 임신중이었죠. 회사로 출근하는 도중 아내는 울먹이며 집에 차압이 들어 왔다고 연락하더군요'
채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호소한 덕분에 간신히 처벌에서 풀려난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결혼정보사업에 뛰어든다.
투명한 운영을 경영 이념으로 삼은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2002년 연 매출 50억원을 기록한 선우는 연간 1만여 회원을 관리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결혼정보회사로 발돋움했다.
그의 성공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켰기에 가능했다. '사랑의 김장미팅' '버스 미팅' '밀레니엄 미팅' 헌혈 미팅' 등 그의 끊임없이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는 숱한 화제를 뿌렸다.
커플매니저, 미팅 상품권 등은 그가 처음 도입한 개념으로 업계를 대표하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2001년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 사장은 '높아만 가는 이혼율을 자랑하는 요즘, 이혼하지 않는 결혼시대를 이끌고 싶다'고 말한다.